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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 2023. 2. 14. 16:39

작중 시점으로부터 대략 15년 전, 하기와라 켄지와 히가 유즈루의 첫만남이 성립됩니다. 서로에 대한 첫인상은 최악에 가까울 수준, 뜬금없는 촌스러운 전학생이라는 생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아주 가벼운 흥미에서 시작된 관심은 호감으로 변질되기 십상이죠.

 

먼저 내가 얘를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한 사람은 유즈루입니다. 유즈루는 제게 흥미를 느끼고 다가온 하기와라를 밀어낼 필요성을 못 느꼈고, 호감을 느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당시 하기와라가 여자를 대하는 가벼운 행실 등을 미루어보아서 짝사랑은 손해라고 여겼기에 유즈루의 감정은 금세 시들었습니다. 단순 친구로 지내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린거죠.

 

하기와라 역시 언젠가는 유즈루에게 이런 모호한 감정을 지녔습니다만 자존심 때문인지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겉으로 티를 내는 일도 없었어요. 그렇게 친구 이상 연인 미만과 같은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던 둘의 터닝포인트는 뻔한 클리셰답게 졸업식이었습니다. 하기와라의 두 번째 단추가 갖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한 유즈루와, 두 번째 단추를 유즈루에게 주기 위해 다가온 여학생들에게 다른 단추를 뜯어준 하기와라. 관계의 발전은 아주 작은 단추로부터 시작된 거예요.


성인이 되고 같은 대학에 진학해서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는 도중에도 서로의 이름은 진하게 각인되어 있었어요. 취하면 그렇게나 불러대는 하기와라 켄지, 전화 통화를 할 때 갑자기 바뀌는 목소리와 함께 나오는 히루라는 애칭. 우리 무슨 사이야? 물으면 쉽사리 대답할 수 없던 둘은 나란히 경찰학교에 입교하고, 너무 당연하게 여긴 서로의 이름에 처음으로 의문을 품게 돼요.

 

자각은 하기와라가 더 빨랐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연애든 끝이 좋지 않았던 그는 유즈루와는 그런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자신도 없었고요. 하기와라 켄지가 연애에 자신이 없다니! 참 우스운 일이죠. 좋아하는 마음은 숨기지 않으면서 사귀자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던 하기와라예요. 유즈루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죠, 사람 마음만 괜히 복잡해지게 말이에요. 하기와라는 본인 나름의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이는 역효과를 불러왔고... 아슬아슬한 감정선을 타던 관계의 하이라이트는 달빛 아래 붙잡힌 손목과 널 좋아해. 지금까지 중 가장 솔직하고 올곧은 하기와라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솔직히 고백한 하기와라였지만 이번에도 역시 사귀자는 말은 나오질 않았어요. 경찰학교 내에서의 연애가 금기시 되는 것도 있으며 앞서 말했듯 이 연애를 망치지 않을 자신이 없었거든요. 웬일로 우유부단한 태도의 하기와라에 유즈루는 부조화를 느꼈습니다. 이 자식 지금 나랑 뭘 하자는 거야?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싱숭생숭한 마음을 뒤로 하고 시간이 흘러 경찰학교 졸업을 앞둔 둘은 유즈루의 슬슬 사귀는 걸로 해두자는 멋없는 고백 멘트와 함께 D+1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됩니다. 무드 없다며 찡얼거리는 하기와라에게 네가 똑바로 처신했으면 더 빨리 사귈 수 있었을 거라고 한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네요. 그러나 기쁜 날도 잠시, 경찰학교 졸업 후 각자 부대에 배속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기와라는 폭탄 테러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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